번뇌

 우리 몸은 번뇌에 민감하게 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몸 또한 진여이니 진여는 분리된 이원화에 즉각 대응한다. 나라는 것을 세우면 나 아닌 것과 부단히 대응한다. 순역(順逆)이 나타나는 것이다. 번뇌가 있는 곳은 이원화가 된 곳이다. 우리는 이 이원화를 아는 앎을 확보함으로써 다시 제자리로 온다. 제자리로 온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 원래부터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부동심의 자리이다. 수연심과 부동심을 모두 아우르는 진여이다.

죽음을 이기는 법

죽음을 이긴다고 하니 도인이 되어 무슨 특별한 능력을 얻어 불로장생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사 이래 그런 사람은 없었다, 중국의 무슨 책에서는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하고는 그 후 소식은 알 길이 없다고도 한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 담대하고 의연한 자세가 되어 죽음에 임하여 눈도 깜짝 않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그것은 죽음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이고 더 이상 어떤 두려움도 일어날 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이고

삶을 완전히 알게 되면 죽음은 더 이상 물을 게 없는 것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이긴다 거나 넘어선다는 것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에 다름 아니다.

삶의 모든 것이 실체 없음을 체득한다면 죽음 또한 실체가 없다

그러나 삶을 부인할 수 없는 실체로 본다면 죽음 또한 엄연한 실체로 다가온다.


스스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자,

엄연한 실체로 느껴진다면 당신은 삶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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