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점

주역을 의리서(義理書)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점서(占書)로 보는데 이런 관점으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사람들은 자기와 관련된 미래를 무척이나 알고싶어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세상의 모든 일은 너무나 많은 변수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변수도 많고 드러난 요인만 해도 많고 많다. 그런걸 모두 계산해서 미래를 알게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요즘 말하는 AI라면 가능할까? 난 모르겠다. 주역점은 이런 딜레마에 번쩍이는 힌트 같이 뭔가를 일러준다. 알려주는 존재는 신이나 뭐 그런 절대자는 아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미 모든 걸 포함하고 있다는 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근거이고, 그런 게 있다는 게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니 점(占)은 점치는 자의 크기나 깊이에 크게 좌우된다. 나랏 일을 점칠 때 필부가 보는 점과 나랏님이 보는 나랏일이 관점과 깊이에서 확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죽음을 이기는 법

죽음을 이긴다고 하니 도인이 되어 무슨 특별한 능력을 얻어 불로장생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사 이래 그런 사람은 없었다, 중국의 무슨 책에서는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하고는 그 후 소식은 알 길이 없다고도 한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 담대하고 의연한 자세가 되어 죽음에 임하여 눈도 깜짝 않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그것은 죽음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이고 더 이상 어떤 두려움도 일어날 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이고

삶을 완전히 알게 되면 죽음은 더 이상 물을 게 없는 것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이긴다 거나 넘어선다는 것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에 다름 아니다.

삶의 모든 것이 실체 없음을 체득한다면 죽음 또한 실체가 없다

그러나 삶을 부인할 수 없는 실체로 본다면 죽음 또한 엄연한 실체로 다가온다.


스스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자,

엄연한 실체로 느껴진다면 당신은 삶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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