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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우리 몸은 번뇌에 민감하게 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몸 또한 진여이니 진여는 분리된 이원화에 즉각 대응한다. 나라는 것을 세우면 나 아닌 것과 부단히 대응한다. 순역(順逆)이 나타나는 것이다. 번뇌가 있는 곳은 이원화가 된 곳이다. 우리는 이 이원화를 아는 앎을 확보함으로써 다시 제자리로 온다. 제자리로 온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 원래부터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부동심의 자리이다. 수연심과 부동심을 모두 아우르는 진여이다.

색즉시공 (色卽是空)

"색즉시공" 하도 유명한 문구라서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익히 들어서 아는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 까지이다. 그 내밀한 속내를 알고 이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이 말은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켜 급기야 색(色)을 관능적으로 해석하여 19금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색즉시공은 반야심경의 키워드이다. 불교에 입문하면 이 짧은 경전을 자주 독송하여 많은 신도들은 이 경전을 술술 외운다. 하지만 정작 이 구절의 의미를 물으면 해석은 각자 다르게 나오는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공부를 차근차근 하려면 기초가되는 연기법 부터 공부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어쩐 일인지 그 단계를 생략하고 반야부 경전부터 접하게 되어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色)이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란 뜻이다. 물질적인 것 뿐아니라 그런 것들이 빚어내는 현상까지도 모두 뭉뚱그려 색 이라 표현했다. 색이 공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텅 비었다는 뜻인데 없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이 공(空)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부처님의 경전인 아함경 부터 보는게 좋다. 거기엔 모든 것이 차체로 실재하는게 아닌 인연에 따라 있는 듯 보일 뿐이라고 하는 연기법을 차근차근 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색이 공하다는 말은 색이 인연에 따라 나투어져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마치 분수와 같다. 물 자체는 형상이 없지만 어떤 흐름이 생기면 곡선을 그리며 형상이 나타나는 것과같다. 모든 생겨난 것들은 이 흐름의 산물인 것이다. 분수는 순간의 인연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지만 그 본질은 空하다 그렇지 않은가? 나머지 모든 것들도 이와같다. 색즉시공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