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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점

주역을 의리서(義理書)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점서(占書)로 보는데 이런 관점으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사람들은 자기와 관련된 미래를 무척이나 알고싶어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세상의 모든 일은 너무나 많은 변수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변수도 많고 드러난 요인만 해도 많고 많다. 그런걸 모두 계산해서 미래를 알게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요즘 말하는 AI라면 가능할까? 난 모르겠다. 주역점은 이런 딜레마에 번쩍이는 힌트 같이 뭔가를 일러준다. 알려주는 존재는 신이나 뭐 그런 절대자는 아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미 모든 걸 포함하고 있다는 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근거이고, 그런 게 있다는 게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니 점(占)은 점치는 자의 크기나 깊이에 크게 좌우된다. 나랏 일을 점칠 때 필부가 보는 점과 나랏님이 보는 나랏일이 관점과 깊이에서 확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색즉시공 (色卽是空)

"색즉시공" 하도 유명한 문구라서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익히 들어서 아는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 까지이다. 그 내밀한 속내를 알고 이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이 말은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켜 급기야 색(色)을 관능적으로 해석하여 19금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색즉시공은 반야심경의 키워드이다. 불교에 입문하면 이 짧은 경전을 자주 독송하여 많은 신도들은 이 경전을 술술 외운다. 하지만 정작 이 구절의 의미를 물으면 해석은 각자 다르게 나오는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공부를 차근차근 하려면 기초가되는 연기법 부터 공부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어쩐 일인지 그 단계를 생략하고 반야부 경전부터 접하게 되어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色)이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란 뜻이다. 물질적인 것 뿐아니라 그런 것들이 빚어내는 현상까지도 모두 뭉뚱그려 색 이라 표현했다. 색이 공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텅 비었다는 뜻인데 없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이 공(空)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부처님의 경전인 아함경 부터 보는게 좋다. 거기엔 모든 것이 차체로 실재하는게 아닌 인연에 따라 있는 듯 보일 뿐이라고 하는 연기법을 차근차근 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색이 공하다는 말은 색이 인연에 따라 나투어져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마치 분수와 같다. 물 자체는 형상이 없지만 어떤 흐름이 생기면 곡선을 그리며 형상이 나타나는 것과같다. 모든 생겨난 것들은 이 흐름의 산물인 것이다. 분수는 순간의 인연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지만 그 본질은 空하다 그렇지 않은가? 나머지 모든 것들도 이와같다. 색즉시공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