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우리 몸은 번뇌에 민감하게 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몸 또한 진여이니 진여는 분리된 이원화에 즉각 대응한다. 나라는 것을 세우면 나 아닌 것과 부단히 대응한다. 순역(順逆)이 나타나는 것이다. 번뇌가 있는 곳은 이원화가 된 곳이다. 우리는 이 이원화를 아는 앎을 확보함으로써 다시 제자리로 온다. 제자리로 온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 원래부터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부동심의 자리이다. 수연심과 부동심을 모두 아우르는 진여이다.

주역점

주역을 의리서(義理書)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점서(占書)로 보는데 이런 관점으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사람들은 자기와 관련된 미래를 무척이나 알고싶어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세상의 모든 일은 너무나 많은 변수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변수도 많고 드러난 요인만 해도 많고 많다.

그런걸 모두 계산해서 미래를 알게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요즘 말하는 AI라면 가능할까? 난 모르겠다.


주역점은 이런 딜레마에 번쩍이는 힌트 같이 뭔가를 일러준다.

알려주는 존재는 신이나 뭐 그런 절대자는 아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미 모든 걸 포함하고 있다는 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근거이고, 그런 게 있다는 게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니 점(占)은 점치는 자의 크기나 깊이에 크게 좌우된다. 나랏 일을 점칠 때 필부가 보는 점과 나랏님이 보는 나랏일이 관점과 깊이에서 확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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