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우리 몸은 번뇌에 민감하게 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몸 또한 진여이니 진여는 분리된 이원화에 즉각 대응한다. 나라는 것을 세우면 나 아닌 것과 부단히 대응한다. 순역(順逆)이 나타나는 것이다. 번뇌가 있는 곳은 이원화가 된 곳이다. 우리는 이 이원화를 아는 앎을 확보함으로써 다시 제자리로 온다. 제자리로 온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 원래부터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부동심의 자리이다. 수연심과 부동심을 모두 아우르는 진여이다.

깨달음

 깨달음은 우리 주변에 늘 있다. 작은 깨달음으로 우리는 삶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술을 먹다가 실수를 하고나면 술이란 게 이렇게 사람을 망치는구나 깨닫고 다음 부턴 술을 끊거나 줄인다.

또 다른 깨달음도 많다. 나이가 들면서 그간의 생각이 바뀔때 어떤 계기를 통해 작으나마 깨닫고나서 바뀐다.

철이 들면서 깨닫는게 많아지는 건 자꾸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진짜 깨달음은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이 세상과 모든 것이 꿰뚫어지는 큰 깨달음을 그 만큼의 큰 의심(궁금증)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일차적인 원인은 그 만큼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훨씬 작은 것이 더 궁금하다. 큰 것을 궁금해 하라고 하면 물러나버리기 일쑤다. 

법화경의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보면 그렇다. 나중에 장자의 전 재산을 물려받기 까지 조금씩 큰 일을 맡아 한 연후 에 드디어 장자의 잃어버렸던 아이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렇다 큰 바다를 모르는 붕어 딱 그 만큼이다. 큰 궁금증이 나게 열심히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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