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우리 몸은 번뇌에 민감하게 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몸 또한 진여이니 진여는 분리된 이원화에 즉각 대응한다. 나라는 것을 세우면 나 아닌 것과 부단히 대응한다. 순역(順逆)이 나타나는 것이다. 번뇌가 있는 곳은 이원화가 된 곳이다. 우리는 이 이원화를 아는 앎을 확보함으로써 다시 제자리로 온다. 제자리로 온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 원래부터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부동심의 자리이다. 수연심과 부동심을 모두 아우르는 진여이다.

주역점 정말 맞나요?

 주역점이 실제로 맞을까요?

희한하게도 딱 맞춘 경우도 있고 영 아닌경우도 있어요.

나는 그게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서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꼭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주역은 거의 답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저 재미로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리 정확하게 답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역은 마치 아이가 선생에게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정말 알고싶어서 행하는 물음을 선생님은 단박에 알아차리고 정성껏 대답해줍니다. 하지만 그저 질문을 위한 질문이나 선생을 테스트해 보기 위한 질문에 선생님은 옳게 일러주지 않습니다.

주역 몽(蒙)괘에 그 와같은 내용의 말이 나옵니다. "내가 어리석은 자(童蒙)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가 나에게 구함이다. 처음 물음에 알려주나 두 세번 묻는 것은 모독이니 그러면 알려주지 않는다. 곧아야 이롭다."

실제로 점을 쳐볼때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신상에 관한 점들이 잘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 야구 롯데가 이길까? 같은 점은 잘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 롯데야구에 목을 맨다거나 심정적으로 마음을쓰는 경우는 진심에 해당되어 답이 나오겠지요.

정치적인 점도 심정적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진심이 우러나면 응답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그런 경도된 마음은 자주 점으로 얻은 응답 메세지인 괘사나 효사를 자기가 바라는 쪽으로 해석해버리는 우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역이 안맞는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지요.

주역은 신이 내게 주는 메세지 같은 게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런 예지능력이 있는데, 어쩌다 잃어버리고 좁은 아집속에 갇혀 살다가 그간 가려지 보이지 않던 걸 얼핏 찾아 알게되는 현상입니다. 참 묘한 맛이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걸로 사이비 종교처럼 삼으면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는 꼴이랍니다. 합리적인 이성적 사고로 먼저 궁구하고 끝내 알수 없는 부분만 점의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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