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점

주역을 의리서(義理書)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점서(占書)로 보는데 이런 관점으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사람들은 자기와 관련된 미래를 무척이나 알고싶어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세상의 모든 일은 너무나 많은 변수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변수도 많고 드러난 요인만 해도 많고 많다. 그런걸 모두 계산해서 미래를 알게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요즘 말하는 AI라면 가능할까? 난 모르겠다. 주역점은 이런 딜레마에 번쩍이는 힌트 같이 뭔가를 일러준다. 알려주는 존재는 신이나 뭐 그런 절대자는 아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미 모든 걸 포함하고 있다는 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근거이고, 그런 게 있다는 게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니 점(占)은 점치는 자의 크기나 깊이에 크게 좌우된다. 나랏 일을 점칠 때 필부가 보는 점과 나랏님이 보는 나랏일이 관점과 깊이에서 확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주역점] 벼랑 끝에서 찾은 한 수: 멈춰버린 가게, 지산겸 괘가 제시한 해법

 

"옆 가게 돈가스집 사장님, 요즘 통 보이질 않으시네..."

작년 이맘때쯤,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는 반가운 소식도 잠시, 1년 가까이 월세는 밀리고 가게 문은 닫혀 있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처음엔 '조금 힘들겠지' 싶어 기다려드렸습니다. 찔끔찔끔 들어오는 월세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어느덧 밀린 월세는 10개월을 훌쩍 넘겼습니다. 전화는 받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도 읽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죠.

하지만 밤늦게 몰래 와서 임대 플래카드를 바꿔 붙이는 걸 보면, 아주 손을 놓은 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답답하고 초조한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명도 소송이라도 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섣부른 행동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지산겸 괘, 나의 상황을 꿰뚫어보다

답답한 마음에 주역점을 쳐봤습니다. 지산겸(地山謙) 5효가 동하여 수산건(水山蹇)이 되는 괘가 나왔습니다.

"不富以其隣 利用侵伐 无不利."

이 효사는 마치 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이웃으로 인해 부유하지 못하다, 침벌을 이용하는 것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 침벌하라는 게 아니라 '침벌(侵伐;침입하여 정벌하는것)'이라는 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무작정 소송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소송을 시작하려는 절차를 밟아가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해결될 수 있다는 뜻이죠. '실증 주역'에서는 상대방의 숨겨놓은 것을 찾아내 압박을 가한다고 했는데, 저에게는 '소송 착수 행위' 자체가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압박 수단 즉 침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행동 개시, 그리고 놀라운 결과

그래서 저는 명분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적극적으로 연락을 시도했고, 응답이 없자 곧바로 내용증명을 발송했습니다. 법적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조치는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업주는 사방으로 인수자를 찾아 나섰고, 보름 만에 감자탕집을 하겠다는 성실한 청년을 데려왔습니다. 다행히 그 청년은 지금까지도 묵묵히 감자탕집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전화위복, 그리고 깨달음

처음에는 막막하고 피곤하기만 할 것 같았던 상황이, 주역이 일러준 덕분에 의외로 순조롭게 해결되었습니다. 때로는 좋게만 해결하려는 방법보다는, '침벌을 이용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경험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해본 주역점이었지만, 그 점괘가 저에게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해주었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막막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때로는 주역 처럼 전체를 함께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작은 한 걸음이 예상치 못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헤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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